▪ 베르가못을 좋아하세요... Aimez-vous bergamote...은 프랑수아즈 사강의 소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한 향입니다. 사실 이 이름은 조금 어색한 표현입니다. 하지만 사강의 책 제목 <Aimez-vous Brahms...>의 무드를 최대한 살리고 싶어 그렇게 이름을 붙였습니다. 사강이라면 제목의 어색함은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이 쓰고 싶은 대로 썼을 것 같았습니다. 시트러스와 레더라는 정석을 벗어난 두 조합으로 만들어졌지만, 어쩌다 보니 모두에게 사랑받는 형태로 완성된 향입니다. 이 향을 만들고 보니 반시대적 성향을 지녔지만, 오히려 그 덕에 많은 사랑을 받은 사강을 닮아있었습니다. 때로는 정해진 길을 벗어났기에 도착하는 아름다운 우연이 있습니다. 의도 없이 만들어지는 아름다움은 목적 없이 피어나는 자연을 닮아 더 사랑받는 듯합니다. 사강의 어록 중 이런 말이 있습니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자신을 완전히 파괴할 필요는 없지만, 원하는 것이 있다면 조금 부서지더라도 눈치 보지 않고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연안의 파도와 들판의 미풍처럼요. 그런 태도는 봄을 닮았습니다. 언젠가 진정한 자신을 피워내게 해줍니다. 이 헤매기 좋은 우주에서 글과 향으로 만났다는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요. 이 향을 맡을 때면 우리는 우연을 조금 더 사랑하게 됩니다. ▪ 장미빛 연무 폴 발레리의 시 <Le vin perdu>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한 향, Rose Fumée는 '장미빛 연무'라는 이름처럼 강렬하고 매혹적인 장미 향을 담고 있습니다. 이 향은 지성으로 성취를 이룬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섹시함을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시에서 묘사된 것처럼, 대양에 던져진 귀중한 포도주 몇 방울은 짙은 장미빛 연무를 피워올리지만, 이내 사라져 바다는 다시 본래의 투명성을 되찾습니다. 이는 우리 인생에서 마주하는 깊고 진한 순간들이 아무리 강렬하더라도 결국 시간이 지나면 희미해지고 사라지게 됨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Rose Fumée는 그런 덧없음 속에서도 찰나의 아름다움과 열정을 포착하고자 합니다. 비록 잠시일지라도 뿌려진 와인으로 인해 색다른 파도를 경험하고, 새로운 꿈을 꾸게 된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히 가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욕망, 꿈, 희망은 모두 바다에 쏟아 부은 와인처럼 사라질 운명일지 모르지만, 그 순간의 강렬함 자체로 우리는 살아갈 힘을 얻습니다. Rose Fumée는 바로 그런 삶의 태도를 향기로 표현한 것입니다. 사라짐을 알면서도 뛰어드는 열정, 그 아름다운 모순을 향에 담아냈습니다. 이 향을 통해 우리는 사라지기에 아름다운 순간의 장미빛 찬란을 보여주려 합니다. ▪ 두 번째 봄 두 번째 봄은 카뮈의 희곡 <오해>의 대사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가을은 모든 잎이 꽃이 되는 두 번째 봄이다." - Autumn is a second spring when every leaf is a flower. 낙엽이라는 난색의 꽃잎으로 가득 찬 계절, 두 번째 봄. 가을. 만개한 가을의 따스함을 부드럽게 건네주는 듯한 향입니다. 이 향은 특별히 두 개의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중 하나인 "Les Feuilles mortes"는 '낙엽'을 의미하며, 자크 프레베르의 시와 이 시에서 영감을 받은 이브 몽땅의 동명의 곡에서 따온 이름입니다. "Les Feuilles mortes"의 영어 버전 "Autumn Leaves"를 Nat King Cole 의 연주로 들어보시는 걸 추천 드립니다. 그 음악 속에서 향의 분위기가 완벽히 녹아 있습니다. 가을은 즐길만한 통증으로 가득한 계절입니다. 차가워진 바람이 주는 적당한 추위, 그 온도의 쓸쓸함. 석양이 담긴 나뭇잎들이 해질녘을 넘기듯 낙하할 때의 공허함. 무엇인지 모를 갈색의 그리움, 이런 것들이 가을 속엔 늘 꽉 차있습니다. 이 정도의 쓸쓸함과 공허, 그리움은 즐길만한 통증입니다. 낮의 따스함과 밤의 서늘함이 공존하는 가을처럼 어떤 날엔 포근히, 또 다른 날엔 쓸쓸히 다가옵니다. ▪ 초록빛 몽상 초록빛 몽상은 랭보의 시 <감각(Sensation)>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한 작품입니다. ”푸른 여름밤 석양녘에 나는 오솔길을 가리라 밀잎에 찔리고 잔풀을 밟으며 몽상가가 되어 발밑으로 그 신선함을 느끼리 들바람은 저절로 내 맨머리를 씻겨주겠지.“ 이 구절 속에서, 우리는 푸른 여름밤 석양녘, 초록 풀을 밟으며 거니는 시인의 모습이 마치 자유로운 초록빛 꿈을 꾸는 듯한 장면을 떠올립니다. 이 향은 여러 번 덧칠해 그려나가는 유화처럼 초록 물감 아래 얼핏 보이게 덮어둔 과실의 빛깔이 깔려있습니다. 검붉은 카시스 열매와 새빨간 토마토의 흔적들. 향기는 시간을 거스르는 기계입니다. 초록빛 몽상은 어느 푸른 여름날 초원을 달리는, 그리고 그 발아래 깔린 열매의 과즙이 튀어 오르는 여름날의 청량하며 달콤한 공기, 겪은 적 없던 그런 날마저도 추억으로 떠오르게 하는 ml로 표기된 액체 상태의 기계입니다. 그저 착하기만 한 초록빛 꿈은 아닌, 초록이라는 활기차고 어린 색상 아래 몽상가의 반항심을 두세 방울 섞어 고요한 뾰족함을 품은 향을 만들었습니다. |